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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세 번째 동행 ( 2 )
눈을 뜬 것은 드미트리가 먼저였다.
흐릿한 시야가 개이자 아이의 얼굴이 시야 한가득 들어왔다. 질겁을 하며 몸을 일으킨 드미트리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아이의 몸뚱이를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몰라요!””
상황은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컨쿼러는 가짜였고, 아이를 공간이동시켜 사지에 밀어넣기 위한 함정이었다. 드미트리는 허둥대며 팔을 휘저었다. 이 공간이동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항변이었다. 허우적대던 드미트리는 곧 아이가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미트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 무슨…?””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황금은 완전히 증발해 있었고, 컨쿼러의 동체도 곳곳이 녹아내려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마술의 재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질서하게 뚫린 동체의 구멍 너머로 어두운 절벽이 비쳐보였다. 아마도 깊은 구덩이나, 절벽의 밑바닥에 이동된 모양이었다. 조심조심 몸을 일으킨 드미트리는 위태한 복도를 타고 걸어나갔다.
끼이익, 반쯤 부서진 문은 불길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이 무거웠으므로 힘이 약한 드미트리는 온 힘을 다해서 열어야만 했다. 문 너머의 풍경이 드러나자마자, 드미트리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뭐, 뭐죠, 이건? 다?”” 세이프게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가짜 컨쿼러가 공간이동된 곳은, 제국의 변방에 은밀하게 숨겨진 구덩이였다. 그리고 이 구덩이에는 괴물들이 들끓고 있었다. 꽤나 많은 경험을 쌓아온 드미트리도 처음 보는 놈들이었다.
“”레버넌트? 아닌데?””

그 괴물들의 형상은 레버넌트를 닮은 듯하면서도 달랐다. 기괴했다. 거무칙칙한 황금빛의 몸체가 끊임없이 녹아내리고, 또 응고되면서 왜곡된 인간의 형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녹내장에 걸린 화가가 오물과 물감을 섞어 인간을 그리면 이렇게 될까? 드미트리는 겁먹은 얼굴로 그 괴물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문득 멈춰섰다. 그 끊임없이 부글대는 얼굴이, 무슨 얼굴을 그리려는 것인지 불현듯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소니아?”” 오픈홀덤
그것은 소니아 아바키렌의 얼굴이었다. 아주 잠깐 소니아의 얼굴을 취했던 그것은 녹아내리며 수백 개의 눈알로 뒤덮였다가, 다시 수백 개의 입으로 뒤덮였다. 그 끔찍한 광경에 놀란 드미트리는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홱! 그에 따라, 그 괴이쩍은 괴물들의 시선이 전부 드미트리에게 모였다. 그들은 천천히 드미트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히익! 오, 오지 마십시오!””

괴물 중 한 놈이 드미트리의 뒷덜미를 잡고 토끼처럼 들어올렸다. 뜨겁고 불쾌한 감각이 목덜미 전체에 느껴져서 드미트리는 눈을 꽉 감았다. 그러나 위해가 가해지지 않아서, 금세 실눈을 뜨고 상황을 살폈다. 괴물들은 드미트리를 확인한 뒤 내려놓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조디악 소속이라서, 그런 거군요.”” 로투스바카라
아마도 이 괴물들은 소니아가 준비한 함정일 터였다. 사자궁과 싸워서 약화된 상태인 아이의 최후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 준비된 놈들일 것이었다. 그러니 드미트리를 알아보고 공격을 멈춘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조금 자신감을 얻은 드미트리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이 구덩이에서 나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아!””
있었다. 구덩이의 절벽을 깎아 만든 계단이었다. 화색이 되어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달려나가던 드미트리는 곧 멈춰섰다. 그 탈출구를 가로막고 선 거대한 괴물 때문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거대한 철검을 짚고 선 그 괴물의 키는 척 보기에도 드미트리의 두 배는 되어보였다. 그 특징적인 크기 때문에 드미트리는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거인 발루아?””
성도 8궁중 하나인 백양궁의 전 주인, 지투앙 발루아. 어느 날 홀연히 실종되었던 그 자가 틀림없었다. 성좌를 확보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자가 아이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마지막 수문장인 모양이었다. 이 자는 다른 괴물들과 다르게 상반신에만 그 금빛의 점액이 달라붙어 들끓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도 이따금씩 소니아의 얼굴로 변했다가 뭉개지기를 반복했다.
“”그, 그래서, 백양궁을 확보하자고 했을 때는, 거절하셨던 건가?””

드미트리는 머리가 핑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어떤 성좌를 확보할지에 대해 논의할 때, 어째서인지 소니아는 백양궁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었다. 눈 앞의 이 괴물이 그 이유임이 틀림없었다. 드미트리도 마술사인 만큼 알 수 있었다. 이 괴물에게서는, 레버넌트 렉스와도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체 이 괴물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소니아는 자신에게 이것을 숨겼는가? 혹시 알았는데 기억이 삭제된 것인가?
‘그러고 보면, 어째서인지 네 수장은 나를 직접 만나는 걸 피하고, 너를 시켜서 모든 일을 처리했지. 왜지?’ EOS파워볼
사자궁이 자신의 멱살을 잡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자신에게도 숨기고 있는 게 있는 것인가? 드미트리가 그렇게 고민할 때였다.
쿵!
발소리였다. 발루아, 정확히는 발루아였던 괴물은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열어주었다. 발루아도 드미트리를 적대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드미트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이 구덩이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겠지요. 그렇게 발루아가 열어준 길에 발을 내밀던 드미트리는 우뚝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쓰러진 채 들어있는, 망가진 컨쿼러의 동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 텅 빈 입구를 바라보는 드미트리의 표정은 복잡했다. 저 문 앞에서 방금 아이가 들려주었던 말이 귓가에서 울렸다. 어쩌지. 갈등하던 드미트리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저는 아까 내기에 입회했을 때, 가미온에게 선서했으니까요. 본의가 아니었다 한들 이대로 벗어나면 제가 심장이 터져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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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미트리는 가짜 컨쿼러의 동체로 돌아가서, 성구를 움켜쥔 아이를 부축하고 낑낑대며 구덩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드미트리와 함께 있기 때문인지, 괴물들은 아이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윽, 무거워…”” 엔트리파워볼
실신한 아이의 몸은 무거웠다. 아이의 몸에 깔리다시피 한 드미트리는 낑낑대며 계단에 다가갔다. 발루아 앞에서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자도 우리를 그냥 통과시켜 줄 것인가? 유심히 두 사람을 지켜보던 발루아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열어주었다. 드미트리는 그 길을 따라 구덩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구덩이에 가득한 괴물들은 멍하니 융해되고 응고되기를 반복하면서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건 소니아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드미트리의 기억을 삭제하고 작센에 홀로 파견한 이유. 그건 이 괴물들로 가득한 함정에 아이를 밀어넣기 위해서였다. 기억을 잃은 드미트리는 아무런 악의 없이 이 곳에 아이를 밀어넣었고, 그랬기 때문에 륜도 이 계획을 읽을 수 없었다. 이 구덩이에 가득한 괴물들의 힘은 강력했다. 특히 발루아로 만든 괴물은 아이도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자궁과 싸워서 만신창이가 된 아이를 이 곳에 밀어넣고 숨통을 끊는 것이 소니아의 진정한 함정이었다.
그런데 그 필살의 함정이 너무나도 쉽게 돌파되었다. 소니아는, 설마, 아이가 드미트리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아이와 드미트리가 함께 살아서 이 구덩이에 들어가는 것은 정말로 예상 외의 사태였다. 거기에 드미트리가 아이를 구해서 구덩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소니아가 알고 있던 드미트리라면, 이런 상황에서 자결을 할지언정 아이를 구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드미트리는 소니아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으그그윽… 으그그그극!””
드미트리는 헐떡이며 아이를 질질 끌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대부분의 기억을 소거당한 상태였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목적의식이 무엇인지를 사후에 문서로 전달받았을 뿐, 생생한 경험은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의 자의식은 갓 조디악에 투신하던 무렵에 가까웠다. 그때의 그녀는, 아이가 만났던 무렵과 다르게, 모질고 냉혹하지 못한 상태였다.
ㅡ 멸망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되면, 차별 없는 나라 대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그런 약속입니다.

이런 말을 건네준 사람을, 그냥 죽게 내버려두고 떠나지 못할 정도로.
“”대체 뭘 먹길래, 으그그극! 이렇게 무겁,습니까!””
드미트리는 낑낑대면서도 결국 아이를 업고 구덩이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조디악이 작센 전체를 내주면서 준비한 최악의 함정은, 결국 그 말 한마디로 돌파당했다.
*
아이가 눈을 뜬 것은, 한밤이 깊어서였다.
밤바람이 찢어진 옷자락을 뚫고 들어와 서늘하게 가슴을 훑고 사라져서, 벌떡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축축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아이는 딱딱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으으음… 무겁, 무겁습니다…””

그 옆에는 허우적대며 잠꼬대를 하는 드미트리가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자기 옷을 자는 사람에게 이불 대신 덮어줄 텐데, 드미트리는 아이의 겉옷까지 벗겨서 자기가 이불삼아 자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아이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이 여자는 왜 내 옆에 있는 거지?
‘드디어 깨어났구나, 어린 순례자야.’
“”림!””
아이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림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아이는 물었고, 림은 자초지종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아이는 복잡한 얼굴로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림은 가만히 물어보았다.
‘어떻게 할 셈이냐. 저 여자는 결국 고의가 아니더라도 너를 배신한 셈이다만.’

아이는 얼굴을 차갑게 굳힌 채로, 옆으로 돌아누워 잠자고 있는 드미트리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자그마한 몸뚱이 위로 아이의 그림자가 음산하게 드리워졌다. 처단할 셈인가? 림이 그 광경을 들여다볼 때, 아이는 드미트리에게 손을 내뻗었다.
휙!
그리고 드미트리가 멋대로 이불 대신 쓰던 자신의 겉옷을 빼앗았다. 밤바람에 드미트리가 부르르 떠는것도 개의치 않고, 겉옷을 걸치고 단추를 채운 다음 자리에 앉았다. 림은 걸걸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주변의 검불과 삭정이를 끌어모아 불을 붙일 준비를 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일단 륜 씨와 상황을 공유하는 게 낫겠어.””
불을 붙여서 몸을 녹이고, 블로어를 붙잡았다. 그러자마자 거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ㅡ 아이 씨 !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몇 시간이나 연락이 끊겨 당황한 륜이 고함을 내지른 것이었다.
ㅡ 에바한테서 그 성 전체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무사한 거에요? 괜찮나요? 아픈 데는 없어요?
“”그만, 그만. 아주 멀쩡해요. 이상한 이유로 도움을 받아서이긴 한데.””
그와 동시에 안도의 한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기다란 y자 나뭇가지로 불이 꺼지지 않도록 헤집으면서, 아이는 가짜 컨쿼러에 들어갈 때부터의 자초지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몇 마디 꺼내지도 않아서 륜은 금세 상황을 읽어냈다.
ㅡ 어쩐지, 소니아는 움직이지 않고 드미트리만 움직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어요. 그래도 그렇게 극단적인 함정을 준비할 줄은 몰랐군요.
그리고 륜은 자신이 들여다보았던 드미트리의 기억에 대해서 늘어놓았다. 드미트리의 기억은 아주 파편화되어 있으며, 아마도 자신이 읽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기억을 삭제한 것이 틀림없다고.
ㅡ 그러니 가미온의 맹세를 어기고도 신벌을 받지 않은 거겠죠. 몰라서 어긴 건 죄가 아니니까요. 상당히 교활한 함정이었어요.

“”미안합니다. 이런 함정도 눈치채지 못해서.””
ㅡ 아닐세, 계획을 꾸미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내가 내 낭군을 위험에 빠뜨렸으니 나야말로 할 말이 없다네.
그런 말이 오가고, 아이는 어둡게 중얼거렸다.
“”결국 진짜 컨쿼러를 확보할 길은 멀어졌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한동안 침묵과 대화가 오갔다. 블로어 너머로 무엇인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륜이 또 공책을 펼치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모양이었다. 정리가 끝난 것인지, 사각대는 소리가 멈추고 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애초에 이렇게 쉽게 컨쿼러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약간 돌아서 가야 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제가 보았던 절망적인 미래들에 비하면 충분히 희망적이니까요.
“”말이라도 고맙군요.””

ㅡ 말뿐이 아닐세. 이미 우리는 작센과 통합된 기나센을 손에 넣지 않았나. 제국이 극도의 혼란에 빠져서 전화에 휘말리는 건 앞으로 6개월 뒤, 그 전까지만 컨쿼러를 손에 넣으면 되는 것이지. 그러니 6개월 안에 자네가 숨겨진 컨쿼러를 찾아서 기나센으로 몰고 돌아오면 끝나는 일일세.
아이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륜의 말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된다, 그런 말처럼 간단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풀리겠습니까?””
ㅡ 간단하게 풀리지요. 이미 우리는 열쇠를 손에 쥐고 있잖아요?
“”열쇠?””


ㅡ 아이 씨 옆에 있는 그 꼬맹이 율사 말이에요, 그 꼬맹이 파계 율사가 내기에 입회할 때, 조건을 뭐라고 했죠?
자기도 작은 주제에 꼬맹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륜에게 뭔가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간신히 그 충동을 삼키고 아이는 대답했다.
“”컨쿼러를 제가 받을 때까지, 가미온의 이름에 따라 입회자의 의무를 신실하게 준수하겠다고… 아.””
ㅡ 그리고 지금 컨쿼러는 우리 손에 없지요?

륜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달은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드미트리를 쳐다보았다. 륜은 명쾌하게 대답했다.
ㅡ 그러니 저 파계 율사는, 심장이 터져 죽기 싫으면 우리가 컨쿼러를 찾는 걸 도와줘야만 하겠죠. 어떤 속임수도, 야료도 부리지 못하고 말을 들어야 할 테구요.
그 서약을 이용해서, 드미트리를 열쇠로 컨쿼러를 찾아다 확보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길을 찾은 아이의 안색이 갑자기 밝아졌다. 블로어 너머에서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ㅡ 그러니 저 여자의 기억만 되살리면 컨쿼러를 찾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니겠어요?
즉, 륜이 연막을 펴서 시간을 벌어줄 동안 아이가 드미트리와 동행하며 컨쿼러를 찾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명쾌한 해답이었다. 추워서 몸을 부르르 떠는 드미트리의 옆얼굴을 보며 아이는 실소를 흘렸다. 세상에서 제일 기묘한 동행이 이뤄질 모양이었다.
“”윽!””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까, 갑자기 격통이 찾아왔다. 사자궁에게 당한 십자형의 낙인, 그것이 남아있는 어깨에서 찾아온 격통이었다. 륜과 림의 걱정을 들으며, 아이는 문득 멀리 남서쪽을 바라보았다. 작센이 있는 곳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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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의 왕성 터.
처음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이 구멍을 감싸고 웅성이고, 조사하고, 호들갑을 떨었으나, 새벽녘인 지금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 구멍은 깊었다. 무저갱을 떠올릴 정도였다. 그 깊은 구멍의 끝자락을 짚고, 두껍고 상처 많은 손이 솟아올랐다. 푹, 외곽을 짚고 빠져나온다.
“”쿨럭, 쿨럭, 이야, 정말 오랜만에 뒈질 뻔했군.””
그건 만신창이가 된 사자궁의 주인, 빌헬름 흐레스베인이었다. 그 상반신에는 거대한 상처가 비스듬히 새겨져 있었다. 참랑격을 얻어맞고 이 깊은 구멍으로 떨어진 그는, 마지막에 기적적으로 사자궁을 벽에 꽂아넣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몇 시간이나 암벽을 타고 올라온 그는 대지에 서자마자 침을 크게 뱉었다. 핏물과 흙이 뒤섞인 침이 거칠게 입에서 빠져나왔다.
“”그놈이 열일곱이라고 그랬나, 열여덟이라고 그랬나. 단테도 그 나이에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만신창이가 된 그는 절뚝거리며 성터에서 벗어나, 예리한 세검 형태가 된 사자궁을 세게 움켜쥐었다. 사자궁과 감응하자, 저 멀리 북쪽에서 낙인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빌헬름은 사자궁을 이용해, 낙인을 새겨넣은 적을 어디까지라도 추적할 수 있었다. 그의 눈썹이 경미하게 떨렸다. 신호는 멀리 제국에서 퍼져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제국까지 이동한 거지?
“”기다려라. 다음에는 내가 이길 테니까.””
빌헬름 흐레스베인,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악마 사냥꾼은 아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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