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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An inquiry into the Nature ( 6 ) 그것이 마레가 아이에게 찾아오기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
참혹한 패배의 기억이었다.
마레는 흰 연기를 토해내며, 폐부를 쥐어짜 말한다.
“”만일… 그들이. 이 땅에 투자해서 벌어들인 이익의 3할을, 항구적으로… 계속 이 땅에 환원한다면. 그들의 악행은, 수리적으로는… 정당화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걸 부정하는 것은, 자신이 쌓아올린 세계관과 철학. 인생 전부를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었기에. 차라리 죽을지언정 부정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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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할을 분배하려는 이유. 그 이유는 장기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서였겠지. 영지를 경영하는 데에 있어 최소한의 호의를 사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되돌릴 수 없게 못 박는 것으로 마레까지 옭아매려 한 것이다.
소니아는 마레가 이 땅에 발을 딛을 때부터, 개인적인 애정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아이의 강함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마레를 스승처럼 여겼다는 것도. 그리고, 마레를 내기로 끌어들인 다음, 저 제안을 하면 절대로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때요,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아닙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조디악, 한 때는 콘체른은 커녕 중소 규모의 파워볼사이트 상단도 되지 못했던 그것을, 가장 큰 콘체른 중 하나로 만들어낼 정도의 지능. 그 악한 지능이 어둡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 환원 때문에, 그들의 압제는… 최소한의 존재 형식을 갖추었다.””
그 긴 회상을 전해들은 아이. 그 눈에선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마레의 멱살을 쥐어 잡고, 나무에 짓찧는다.
“”그래서요! 그까짓 돈 때문에, 그것 때문에 이 땅 사람들 전부를 노예로 팔아넘긴 거냐구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는 마레. 아름답다. 마레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환술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는 눈물 젖은 눈으로, 마레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을 훑어본다.
그 별 밝은 마을. 그 마을에서 동생을 구하고자 몸을 던졌던 꼬마아이가, 촌장이, 이리나가, 뢰프가, 이 땅에서 마주친 밝고 선량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것은 웃고 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미소는 박피된 듯 사라지고, 그 얼굴 위에 황금의 가면이 억지로 씌워진다.
각자의 형식으로 완성되어 있던 그 얼굴들이 부서져, 가면이라는 하나의 형태로 고정된다. 그 팔만이 기형적으로 덧자라, 바닥을 붙잡고 울부짖는다. 하나의 인간이, 노예로. 하나의 망령으로 변한다.
“”당신!”” 파워볼게임
이건 도발이었다. 아이는 그 모습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마레를 돌아보며 멱살을 붙잡았다.

“”저렇게… 저렇게, 끔찍한 노예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무심코 꺼낸 말. 그 말이 죽은 듯 쓰러져 있던 마레의 역린을 건드린 걸까.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도 그 허섭스레기들과 똑같은 말을 하려는 거냐?””
-그 따위로 악에 의존해 살아갈 삶이라면 죄를 짓기 전에 순교하는 게 낫다, 그게 주의 뜻이다!
재판에서 악에 받쳐 소리 질렀던 비명. 그것을 되새기게 만든 아이의 말이, 마레의 몸에 분노를 불어넣는 듯했다. 마레는 거꾸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노려보며 말한다.
“”잘 들어라. 어떤 가혹한 압제보다도 끔찍한 것. 폭력보다 무서운 것. 그건, 폭력조차 없는 거다.”” 엔트리파워볼
압제라는 형식으로나마 질서와 통제를 제공하던 두 군사집단. 그들이 사라지자, 이 땅은 무정부 상태와 혼란만 남았다. 마레와 아이가 이 땅을 떠나도, 계속해서 범죄자들은 유입될 것이다. 그들 안에서 스스로 범죄자들이, 군벌과 도적이 발흥할 것이다.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 땅과 최소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어떤 거대한 세력이 있어야만 했다.
“”조디악은… 그 세력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했어. 군사집단과 달리, 반드시 이 땅의 민초에게 이익을 환원해야 하는 자연적 메커니즘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 하지만, 3할을 환원해준다면… 다르다.””
소니아가 2할 4푼이라고 제시한 이유. 그것은, 카나기와 아지프가 의도치 않게 이 땅에 제공했던 자선의 총량이 그쯤이었기 때문이었다. 3할이면, 그것을 압도한다. 카나기와 아지프의 압제가 선한 영향력이 있었노라고 긍정한 자라면, 따라서 조디악의 압제 또한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치안과 질서는 모든 것의 토대다. 그게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도, 장사를 할 수도, 거래를 할 수도 없어. 아무것도 없단 말이다. 모든 세력이 떠난 이 땅엔 아무것도 없어! 모자란 생산력은 기아와 기근을 그 표현형으로 갖는다. 내가 그렇게 놔둬야 했다는 말이냐?””
“”닥쳐요! 돈, 돈, 그깟 돈 얘기에요? 그럼 인간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건 괜찮아요? 존엄성, 그런 건 어디에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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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의 눈이 흉흉하게 빛난다.
“”별빛을 삼켜 오물로 만드는 기관. 인간의 장기 중 가장 비극적인 기관은, 위장이다.””
이것도 환술인가. 아이의 눈앞에 장난감 병정처럼 자그마한 사람들의 형상이 떠오른다. EOS파워볼 투명한 피부를 가진 그것의 뱃속에는, 붉게 번들거리는 위장이 보인다. 그것들은 하염없이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십만 명의 사람이 사는 땅을 가정하자. 십만 명이 하루 세 끼를 먹으면 삼십만 개의 밥공기가 필요하고, 일 년이면 일억 그릇. 백 년이면 백억 개의 밥공기가 필요해. 백억 번 위장이 채워지고, 씻겨지고, 오물을 토해내야 한 뙈기의 땅이 태어나고, 늙고, 죽는다.””
마레의 말에 따라 자그마한 인간들의 앞에 그릇의 산이 쌓인다. 그렇게 쌓인 백억 개의 흰 그릇은, 뼈를 쌓아 만든 탑처럼 하얀 빛을 뿌리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마레는 그 환술의 탑을 등지고 씹어뱉듯 말한다.
“”네가 말하는 그 존엄이, 이 백억 개의 밥공기에 갈음할 수 있단 말이냐? 백억 개의 위장을 채워줄 수 있냔 말이다.””
“”그건…””

“”사회의 압력에 짓눌려 우선 위장을 달래는 것도 할 수 없는 이들. 그들에게 철학자의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 왜 존엄하지 못했느냐고 비난하는 것. 그건 또 다른 방식의 압제일 뿐 아무것도 아니야!””
마주 소리 지르는 마레. 아이는 입을 우물거리며 눈물을 삼키고 있다. 그렇게 노려보던 마레는, 흥분이 좀 가라앉았는지,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은… 위장을 달고 태어났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할 수밖에 없어. 너는 부단히 다른 사람들을 구원했지, 그래. 그걸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남에게 받은 구원 따위, 적선받은 금화 같은 것이다. 쓰면, 다음 날엔 사라져버리지. 결국 인간을 구원해 그 위장을 달래게 하는 건, 스스로의 노동이며 생산이다.””
치이익,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마레. 흰 연기가 뻗어나간다.
“”그 노동의 토대가 되어줄… 무언가. 무언가가 되겠다고 나선 이상, 그리고 그 최소한의 생을 떠받칠 돈을 주겠노라고 약속한 이상, 나는 조디악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게 내 최후 진술이다.””
“”누가, 누가 그걸 해 달라고 했어요?”” 로투스바카라
아이는 부들거리는 입술을 열어 간신히 반론을 꺼낸다.

“”누가 해 달라고 했냐고요! 한쪽 팔이 잘려 낙담해 술주정뱅이가 되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도 걸고 나서던 뢰프라는 아저씨가 있었어요. 자기도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동생을 위해서 마차 앞에 드러눕는 용기를 가진 꼬마도 있었어요. 사람은 숫자가 아니에요! 그 사람들한테 가서 직접 얘기해봐요! 미안하다, 너희를 위해서 너희를 내가 노예로 팔아넘겼다, 그럼 그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좋아할 것 같냐구요!””
침묵. 긴 반론 대신, 마레는 긴 침묵을 택했다. 그리고 답한다.
“”부정하지 않겠다. 죽여라.””
“”그렇게 당당하고 자기 행동에 확신이 있었으면, 그 혓바닥으로 또 나 같은 멍청이는 속여넘기고, 또 여자나 꼬시면서 잘 살 것이지…아.””
분노로 말을 늘어놓던 아이는,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닫고 멍청히 중얼거렸다.
“”당신도, 확신이 없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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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대로라면, 이 목숨을 건 의뢰. 그 의뢰의 대가로 마레가 개인적으로 받는 건 없었다. 마레가 결심한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희생, 그것이었다. 심지어, 그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마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붉은 눈은, 이제 다른 감정을 담고 마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연민이었다.
“”그 길을 택하면서도, 스스로도 이게 옳은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틀렸다면, 최소한, 죄를 갚으려고. 나한테, 마술사를 죽이는 사람한테, 죽여달라고 나선… 거였어요.””
이것은 마레가 전하는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고개를 푹 숙이며 떠는 아이. 마레는 무심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움직여 무언가를 집어 들고 다가왔다. 블로어였다. 바우얀이 남기고 간 블로어.
“”성숙하긴 했군. 하지만 아직 많이 모자라.””
마레는 아이의 팔을 비틀어, 억지로 블로어를 그 품에 안겨주었다. 그리고 유언을 남기듯 말한다.

“”이 땅의 운명으로 그렇게 괴로워하지 마라. 여기는 네 고향도, 너의 터전도 아니잖나.””
“”하지만…””
“”너는 이걸로 네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품을 얻었지. 그러면 된 거다.””
아이는 눈을 치뜨며 마레를 바라보았다. 마레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시구 같은 말을 늘어놓는다.
“”모든 것을 태우려는 방주는 가라앉기 마련이겠지. 그렇게 모든 것을 사랑하려고 하면, 아무 것도 사랑하지 못하고 부서지기 마련인 거야. 그래서 사람은 자기 자신, 자기 가족, 자기 민족만을 사랑하도록 창조된 거다.””
또다시 이어진 침묵. 그리고 툭 덧붙였다.
“”그게… 주의 뜻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 노예가 되었다고 괴로워하지 마라. 어차피 이 땅은 너와 무관계한 땅이다. 그런 위악. 아이는 그런 위악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항변하듯 소리쳤다.
“”그러는 당신은요!””
푸드득, 싸움이 끝난 줄 알고 날아온 새가 고함에 놀라 다시 날아오른다.
“”그러는 당신도, 목숨을 깎아 번 돈을 전부 무관계한 고아들한테 바치고 있잖아요! 왜, 왜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말을 해요!””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는 마레. 한 방 얻어맞은 듯, 계속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다. 가라앉듯 주저앉는다. 나무벽에 기대서.
“”내가 네게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가진 것과 같은 성자와 같은 선의, 긍휼함, 원대한 이상. 그런 건 없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있는 거라곤 죄뿐이겠지.””
“”그게 무슨…””
마레는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리고 희미하게,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떨며 말한다. 살을 찢고 깊이 박혀, 도저히 꺼낼 수 없는 화살조각을 헤집어 빼내려 하는 듯이.
아이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야만, 간신히 마레의 말을. 그 고해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고아원 출신이었다.
단순히 운영회비를 빼돌리려고 만든 쓰레기 같은 고아원이었지.

어느 날 거기에 불이 났는데, 서까래가 무너져서, 내 누이가, 깔렸어.
부실하게 지은 서까래에…
그래서 꺼내달라고 울부짖는 누이를 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서까래 하나만, 하나만 더 제대로 지었으면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그것만 있었더라면
그냥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정신을 차리면 이러고 있었을 뿐이야.
아이는 그 말을 듣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마레는 판결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피식, 그 입이 자조의 조소로 일그러지고, 조용히 입을 벌린다.
“”어차피 나는 글렀다. 카나기에게도 저주를 받았고, 본단에선 끈 떨어진 신세. 조디악과 손까지 잡았지. 돌아가면 나를 기다리는 건 십자가와 화형대다. 너는 마술사를 죽여 그 심장으로 힘을 얻을 수 있었지? 나는 화형대의 재가 되느니 너의 힘이 되고 싶다. 죽여라. 내 피가 네 분노를 조금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기를.””
그리고 가슴을 벌린다. 칼에 심장을 내주려는 것처럼. 검이 그 가슴에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은 마레가 기대한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아이는 블로어를 마레의 품에 안겨주었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며, 정의 없는 힘은 압제한다.’ 블로어의 검면에 적힌 문구가 달빛을 받아 번쩍였다.

“”자요.””
“”뭘, 하는 거냐?””
“”당신은 돌아가도 죽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방법이 있잖아요.””
“”무슨 방법?””
“”아나테마는, 제국의 큰 공적이라고 그랬죠? 척살해야만 하는 대상이라고… 그 소재를 밝힌다면, 엄청난 공적이 되지 않을까요. 함부로 손대지 못할 만큼.””
마레는 놀라움으로 입을 벌렸다. 아이는, 지금 본단에 돌아가 자신을 고발하라고 사주하고 있었다.
“”너 지금 그게 무슨…””
“”조디악과 했던 일. 그런 건 전부 내 탓으로 돌려버리세요. 이 검 정도면 나와 함께 있었다는 좋은 증거가 되겠죠? 그러니까, 나쁜 아나테마를 만나서, 협박당했다고, 그리고 그 멍청한 놈을 속여서 검까지 훔쳐 빠져나왔다고… 보고하세요.””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겠다. 그런 선언이었다.
“”헛소리하지 마라. 그럼 심문관이 파견될 거야. 너 하나를 잡기 위해서. 자살은 다른 방법으로 하길 추천한다.””
“”헛소리가 아니에요!””

크게 소리치는 아이. 마레는 그 기세에 압도당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지난 몇 달간, 당신에게 배운 것 덕분에 나는 몇 번이나 목숨을 구했어요.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배운 걸 실천해보려고 해요. 이건 내 심정입니다. 내가 죄를… 누명과 거짓말을 뒤집어쓰더라도.””
아이는 아직까지 그 눈꼬리에 눈물이 남아 있는 눈으로, 최선을 다해 웃어보였다.
“”당신을 살리고 싶어요.””
찬란한 아침이슬 같은 웃음. 그 웃음은 더 이상 반론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레는 블로어를 끌어안고,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다, 툭 한 마디를 던졌다.
“”너와 만나고 나서… 헤어진 두 달간. 미련이라고 할까, 그런 게 조금 생겼다.””
아이는 블로어를 안겨 주고, 마레의 옆에 앉았다. 마레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한다.
“”나는 시간을 때우려고… 책을 한 권 쓰고 있었어””

그는 그 책에 관해서, 아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말들을 늘어놓았다. 아이는 처음에는 귀기울여 그 말을 들었으나, 점점 이해하지 못하고 졸음이 쏟아질 것 같아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아야만 했다.
“”내가 처음의 저작에서 악이라고 뭉뚱그려 정의했던 것을, 좀 더 엄밀하게 정의해보고자 한다. 악의 그 썩은내나는 살코기를 발라내고 드러낸 하얗고 단단한 뼈, 그 이름이 무엇인지 너를 보고 알았어. 그건, 이기성이야.
이기성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위태한 존재라는 걸 네 덕분에 깨달았으니까.
그릇 없이는 아무리 맑은 물이라도 흘러넘쳐 증발하듯이, 주 앞에 진정으로 가장 긍휼하고자 하는 선량한 정신조차도 사실 이기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자기 민족의 세금을, 다른 민족의 가난한 이를 위해 쓰자고 외치는 이를 본적이 있나? 정말로 최선의 대자대비를 가정한다면, 그게 안 될건 또 뭐 있나. 신 앞에선 똑같은 인류 아닌가. 그런데 현실정치적으로 이런 소리를 진지하게 지껄이고 다니는 놈이 있다면 그건 정신병자겠지.
까딱하면 그런 정신병자가 될 수 있는 녀석이 내 눈 앞에 있구나, 그렇지?

가능한 선의 실천 중 최선에 속하는 자선과 분배조차도 무의식적으로 민족이라는 이기성의 벽으로 그것을 획정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자본은 민족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이 자식, 이해 못 했지?””
그 길고 어려운 말을 알아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마레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죽기 전에 미련이 있다고 한다면, 그 책을 완성하지 못한 거였다. 네 덕분에 그 책을 완성할 유예를 번 것 같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로 가득한 하늘을.
“”그러니 그 책이 완성되면 너에게 헌정하마.””
“”그래서… 그 책이 무슨 책인가요.””
“”대안.””
마레는 성 아우렐리우스를 떠올렸다. 그를 만난 재판일도 떠올린다. 마레가 책상을 떠나 광야를 떠돌게 만들었던 그 날을.

“”대안은 있느냐, 도저히 답을 찾지 못했던 그 여섯 글자. 그 여섯 글자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이해받지 못해 괴롭더라도,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해.””
아이는 골똘히 생각하다 되받았다.
“”그게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몰라.””
“”그럼,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만약 그 책이 세상을 조금 더 밝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마레는 휘적휘적 움직이며, 짐을 꾸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건 주님의 몫도, 내 몫도 아니고.””
카나기가 본격적으로 척살을 위해 움직이기 전, 랭 교구에 도착하려면 일찍 짐을 꾸려야 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떠나려고 마음먹은 듯 했다. 그 붉은 등에 새겨진 금색의 십자가가 아련하게 빛난다. 또 담배를 입에 물고는, 손을 번쩍 든다. 인사를 하려는 듯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겠지.””
그 말과 흰 연기. 그것이 마지막 작별의 인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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