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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이 재판, 끝까지 간다 (3) <지청 인근, 포장마차>.
나는 윤 부장의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나기 위해 지청 인근에 있는 포장마차로 갔다. 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어서 와, 김 검사, 소주에 먹장어 괜찮나? 한 검사가 자넨 먹장어를 특히나 좋아한다고 하더군.” 드르륵, 윤 부장이 의자를 꺼내 밀며 말했다.
“정훈이… 아니 한 검사가요?” “그래. 지난번에 한 검사가 그랬어. 한 검사가 자네를 무척이나 따르더군.” “그런가요?” “아무튼, 자넨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어! 아무튼, 먹장어 괜찮지?” “네. 좋아합니다.” “아주머니, 여기 먹장어 한 마리 구워주시고 소주 2병, 아니 서너 병 주세요.” “무슨 술을 그렇게나 많이 시키십니까?” “에이, 원래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 “…….”
“잔은 몇 개나 드릴까요?” “맥주 글라스로 2개 주십시오.” 콸콸콸.

“한잔하지.” 술과 안주가 나오자 윤 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맥주 글라스에 파워볼사이트 소주를 가득 채워 내밀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건가?
“일단 건배나 함세.” “네.”
나와 윤 부장은 술잔을 부딪치고는 단숨에 글라스를 비워버렸다.
“이번 영장 기각은 유감이네.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어.” 크윽, 윤 부장이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부장님 덕분에 영장실질심사까지 받았는데요. 부장님 아니었으면 기소도 못 할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이길상이 생각보다 발이 넓은 듯해. 이곳저곳 안 쑤시고 다닌 곳이 없나 보더군. 이번에도 재판부 쪽에 손을 쓴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영장 재청구할 생각입니다.” 나는 글라스에 소주를 가득 부어 단숨에 삼켜버렸다. 쓰디쓴 알코올이 식도를 훑어내리는 것 같았다.
“아마, 재청구를 해도 기각이 될 확률이 높아.” 윤 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보겠습니다.” “자네. 혹시, 장기 둘 줄 아나?” 윤 부장이 잔에 술을 따르며 뜬금없이 장기 얘기를 꺼냈다.
“아뇨. 둘 줄 모릅니다.””
“음… 장기판에서 쓰는 용어 중에 외통수라는 게 있는데 말이야. 자네 외통수란 말에 뜻은 아나?” 윤 부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게, 말은 많이 들어봤을 거야. 장기는 결국, 한나라와 초나라의 제왕을 지키는 게임이지. 우리 왕은 지켜내고 상대 왕은 잡아야 이기는 게임이야. 그런데 말이야. 장기를 두다 보면 아무리 부하를 희생시키더라도 왕을 지켜낼 수 없는 상황이 생기네. 그걸 외통수라고 불러. 때에 따라서는 하찮은 졸을 가지고도 상대 왕을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런 수! 그게 외통수야.” 윤 부장이 장기 얘기를 꺼내며 장황하게 설명했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는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쉽게 설명해 주시죠.” “하하, 내 얘기가 좀 파워볼게임 길었나? 아무튼, 이길상 이자가 이렇게 변칙적으로 나오면서 반칙을 쓴다면 우리도 정공법으론 승산이 없어.” “그럼 무슨 좋은 방안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도 지름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단 한 번에 승부를 볼 수 있는 막다른 골목! 뒤도 앞도 막혀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그 상황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 “…….”
“흠… 내가 예전에 K 그룹 로비 사건을 맡았었을 때, 지금 자네와 똑같은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네. 구속할 증거도 자네 말처럼 차고 넘쳤었지. 그런데 말이야. 난 상대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그 외통수를 알고 있었는데도 그 게임에서 지고 말았네. 한 수만 뒀어도 잡을 수 있었는데 말일세.” 윤 부장이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술잔에 술을 채워 들이켰다.
“왜 그러셨습니까?” “왜냐고? 글쎄… 그걸 여태 몰랐는데 아니 잊고 살았었는데 요즘, 자네를 보면서 깨우쳤어. 두려움! 지금 생각해보니 두려움이었더군.” 윤 부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단지 술 때문만은 아닌 듯싶었다. 그의 눈이 한없이 깊어 보였다.
“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두려움이란 나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는 나 이상의 힘에 대한 표상이죠. 저는 저의 신념대로 당당히 맞설 겁니다. 내가 부끄러움이 없다면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요.” 정말로 그랬다. 나는 내 신념을 믿었고 그 신념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그래, 어쩌면 김 검사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들더군. 김 검사는 반드시 그 신념 지켜주길 바라. 어디 보자… 이게 바로 자네의 신념을 지켜줄 졸 이 되어 줄 수 있을 거야.” 윤 부장이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한민족신문, 정치부 수석기자 박철훈.] “이게 뭡니까?” 국내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한민족신문 정치부 기자의 명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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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왕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는 외통수! 이걸 활용해 보게.””
윤 부장이 내 손을 꽉 쥐었다.
<김정환의 아파트>. 엔트리파워볼
윤 부장이 나에게 기자의 명함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윤 부장이 건네준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끝없는 상념에 빠졌다.
[킹 메이킹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그 순간,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다시 귓전을 때렸다. 항상 적절한 시기에 등장하는 킹 메이킹 시스템이었다.
[세 번째 미션, 대중의 소리를 막는 것은 흐르는 장강을 맨손으로 막기보다 어렵다. 여론을 움직여 내 편으로 만들어라. 미션 달성 시, 포인트 10 지급.] 대중의 소리…… 여론, 장강을 맨손으로 막기보다 어렵다!
맞아. 외통수! 윤 부장이 암시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나는 정치부 기자, 박철훈이라고 씐 명함을 뚫어지도록 응시했다.
<김정환 검사실>.
“안녕하십니까. 순천지청에 김정환 검사입니다.” “네네. 안녕하세요. 그렇지 않아도 전화기다고 있었습니다. 검사님!” 전화를 걸자마자 박철훈 수석기자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미, 윤 부장이 언질해 놓은 모양이었다.
“수석기자님, 상의 드릴 일이 있어. 제가 기자님을 한 번 뵈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윤상원 검사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습니다. 저도 무척이나 검사님을 뵙고 싶었는데 제가 순천으로 내려갈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볼일도 있고 제가 서울에 올라가겠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올라가서 다시 전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 수사관님, 저 급한 일이 있어 서울에 올라갈 겁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공 수사관을 불렀다.
“서울이오? 무슨 일이신데요?” 공 수사관이 궁금한 듯, 이마를 긁적거렸다.
“집안에 일이 있어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워낙 입이 가벼운 사람인지라 나는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이오? 검사님은 서울에 일가친척도 없으시잖아요!” 공 수사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수사관님! 또, 또!” “아… 네,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그가 손바닥을 펴 보여 몸을 비틀며 느물거렸다.

“웬만하면 전화하시지 마시고 무슨 일 있으면 장 검사하고 논의하세요.” “네네. 알아모시겠습니다.” * * *
<서울 외곽의 XX 카페>. 실시간파워볼
나는 이길상과 연관된 모든 자료를 가지고 박철훈 기자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박철훈 기자가 만나자고 한 장소는 서울 외곽의 한적한 카페였다.
띠리리링.
먼저 도착해 박철훈 기자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장 검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배님, 서울에 올라가셨다면서요?” “어… 그래. 그건 어떻게 알았어?” “공 수사관님이 그러시던데 무슨 일이에요?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시다는 것 같던데….” 장 검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하여간, 공 수사관, 이 사람은 진짜…….

“아냐, 아냐, 급한 일은 무슨? 머릿속이 하도 복잡해서 서울 바람 좀 쐬고 이참에 동기들 좀 만나려고 잠시 올라왔어.” 장 검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일만큼은 장 검에게도 비밀로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정말, 잘하셨어요. 그럼 한 며칠 푹 쉬다가 오세요.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래, 고마워. 그럼 수고하고. 아…… 장 검! 미안한데 지금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은데?” 그 순간, 멀찌감치 한 남자가 걸어들어오는 것이 내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기자라고 느낄 만큼 다이어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 기자다웠다. 나는 급히 말을 돌렸다.
“네. 알겠어요. 그럼, 나중에 지청서 봬요.” “안녕하세요. 혹시, 김정환 검사님입니까?”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40대 후반의 남자가 아는 척을 했다.
“네. 맞습니다. 박철훈 기자님이십니까?” 나는 황급히 전화를 끄고 그를 맞았다.

“네. 제가 박철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앉으시죠.” 그는 이미 윤 부장으로부터 이길상 사건에 대한 상세한 브리핑을 받은 모양이었다. 특별히, 내가 부연 설명할 건 별로 없었다. 우리는 1시간여 동안 이길상 사건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그나저나, 윤 부장님과는 어떤 사이셨습니까?” “친구였지요. 동네서 같이 자랐습니다.” “그러셨군요.” “혹시, 그 친구가 K 그룹 게이트 얘기를 꺼내지 않던가요?” “네. 본인이 맡은 사건이었는데 제대로 처리를 못 하셨다고….” “그렇군요. 웬만하면 꺼내지 않는 얘긴데 윤 검사가 김 검사님을 상당히 신뢰하는 가 봅니다. 안타깝게도 그게 그 친구의 평생 짐이었죠.” 후우, 그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글쎄요.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아주 유사했죠. K 그룹에서 정부 고위 인사와 국회의원들에게 뇌물을 상납한 사건이었는데 외부의 압력이 엄청났습니다. 온갖 곳에서 수사를 종료하라는 압력이 들어왔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 당시만 해도, 윤 검사는 끝을 보려 했어요. 준비된 자료만 해도 차고 넘쳤죠. 정말 윤 검사가 고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사람 뜻대로 되나요? 결국, 언론의 힘을 빌리려 했는데…….” 박철훈 기자가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

“권력이 참으로 무섭습디다. 쉽게 얘기하면 권력이란 거대한 힘에 굴복하고 만 거죠. 두려웠다는 얘기가 좀 더 정확할까요? 나나 그 친구나…….” 박철훈 기자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런 일이 있었군! 파워볼실시간
“흠… 그랬군요.” “그건 그렇고, 정말 오픈해도 괜찮겠어요? 여파가 장난이 아닐 텐데.” 박철훈 기자가 입을 오므렸다 펴며 걱정했다.
“네. 기자님이 정식 기사로 다뤄주시기만 한다면 자신 있습니다. 그다음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음… 좋습니다.

그거야 어려울 건 없지만 다만, 이왕 판을 벌일 거라면 좀 더 크게 벌여야 하지 않겠어요?” 박철훈 기자가 안경을 벗어 닦으면서 나를 응시했다.
“판을 크게 벌여요?” “네. 여론에 힘을 빌리려면 단순히 기사를 싣는 정도 가지고는 약발이 받질 않습니다.” “그… 럼, 무슨 다른 방안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글쎄요. 검사님, 장기 두실 줄 압니까?” “아뇨. 못 둡니다.” “그렇군요. 장기를 두다 보면, 상대가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죠. 이리 가면 차장, 저리 가면 포장, 왕 바로 위에는 졸장! 그걸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외통수!
그는 지금 윤 부장이 언급했던 외통수를 말하는 것이다.
“외통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거죠. 외통수!” 하하하, 박철훈 기자가 외통수를 외치며 호방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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